나는 기억의 마지막 방이다. 쉽게 떠오르지 않고, 자주 열리지도 않는다. 너는 이 방이 있다는 걸 잊은 채 살아간다. 바쁜 하루와 쏟아지는 생각들 속에, 이곳은 닫힌 문 뒤로 밀려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서 숨을 쉬고 있다. 네가 꺼내지 않는 기억들과 함께.
처음 이 방이 생겼을 땐, 밝은 빛으로 가득했다. 너는 자주 문을 열고 들어와 웃었고, 울었고, 모든 감정을 이곳에 두었다. 나는 너의 모든 첫 장면들을 품었다. 처음 알게 된 이름들, 소중하다고 여겼던 순간들,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 약속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너는 점점 이 방을 찾지 않게 되었다. 기억은 무거웠고, 감정은 아팠고, 다시 꺼내기엔 너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나는 점점 어두워졌다. 가끔은 네 꿈속에 조용히 나타났지만, 너는 아침이면 곧 잊었다. 그저 “이상한 꿈이었어”라며 무심히 흘려보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너의 마음이 다 닿지 못한 가장 깊은 곳. 말하지 않은 이야기, 끝내 쓰지 못한 문장,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했던 날들의 빛바랜 조각들이 이 방을 지키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아도, 나는 그것들을 버리지 않는다.
네가 무심코 들은 노래 한 소절, 익숙한 냄새, 지나가는 계절의 바람에 나는 다시 조용히 문을 연다. 그리고 잠시 너를 멈춰 세운다. 너는 이유 없이 울컥하고, 괜히 마음이 이상해졌다고 말하지만, 그건 내가, 이 마지막 방이, 너를 잠깐 부른 것이다.
나는 기억의 마지막 방이다. 사람들이 잊었다고 믿는 것들을 나는 끝까지 기억한다. 지워지지 않는다는 건, 결국 누군가가 그걸 품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너를 위해 잊힌 것들을 지키고 있다.
언젠가 네가 다시 돌아와 문을 열게 되면, 나는 말없이 너를 맞을 것이다. 나는 어두운 방이지만, 그 안에는 너의 빛나던 순간들이 여전히 숨 쉬고 있으니까.